어제 설 연휴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3년 동안 변함 없이 길기만 했던
머리 모양을 바꾸어 기분전환을 좀 해 보고자 미용실에 들렀었다.
손님도 많았고 디자이너 한 명이 아파서 쉬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10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와서 평소처럼 모든 정리를 끝내고 11시 쯤 티비를 켜고 드라마를 보다가
무심코 돌린 채널에서는 숭례문이 불에 타고 있었다.
처음엔 '어? 저건 또 뭐지? 어디 불났나?' 라고 스쳐 보았다가 다시 제대로 보니 '숭례문 전소' 라는
다섯 글자가 눈에 명확히 들어왔다.
이건 또 무슨소린가 싶어서 한 10여분 정도 뉴스를 계속 보고 있었다.
사건 인 즉 기와 안쪽에서부터 시작된 불을 기와를 들어낸 다음에 끌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
문화재청과 소방당국등의 기관들의 고민과 합의에 따라 들어내고 불을 끄기로 결정.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위로부터 승인을 받고 절차를 밟는데 걸린 시간이 길어
기와 해체 작업 실패. 그 후로부터 몇천년동안 말랐다 젖었다를 반복한 숭례문은
잘 말린 장작처럼 활활타기 시작했다.
12시 쯤에 보기 시작했으니 한 참 최고조에 이르렀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까지 방화인지 누전인지에 대한 감식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두웠던 밤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 날이 밝아지니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앙상한 뼈대와 내려앉아버린 기와, 무너져 내린 숭례문.
그 흔적의 처참함은 으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전소되고 난 후 여기저기서 문제점들이 터져나온다.
기와 해체 등의 빠른 대응을 하지 못한 관계부처들, 경비없체를 무료 무인시스템으로 바꾸고 잘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담당기관들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넘어 들어갈 수 있을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숭례문 주변의 상태, 이로 인해 발생했을지 모르는 방화.
언제까지 이런 문제들은 방치해 둘지 정말 걱정스럽다.
태안사건 터진이 얼마되지 않았고, 이천 물류창고 화재, 작년 말 부터 정말 말도 할 수 없을만큼의
큰 대형사고들이 속속 터져 나왔다. 예전에 불탄 낙산사도 완전한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고,
다른 사고의 상처들 역시 절반조차 아물지 못했다.
불국사가 다 타서 없어지고 나면 다들 정신을 차릴까? 우리들의 뿌리가 다 없어지고나면 그제서야
통곡하며 반성하게 될까? 영어도 좋고, 세계화 선진화도 좋다. 돈 많은 나라가 되는 것도 좋고,
초 일류 기업으로 자라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역사와 뿌리가 없어진다면 그 모든 것들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아래 동영상 끝부분에 나오는 어느 여자분 말처럼 '어떡해 어떡해'만 연발하고 있었던 내 모습이
참 힘없고 속상하게 느껴졌던건 처음이다. 다 타버린 숭례문의 기왓장 사이로 흘러내리는 잿물을 보면서
저 곳에 모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국보 1호가 타 버렸다.
복원할 수도 있다지만 그 의미가 종전의 국보 1호의 의미와 같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2월 12일자 기사.(아무리그래도이건아니다.)
숭례문 용의자 "토지보상금ㆍ추징금 불만으로 방화"
"숭례문 방화범 `열차 테러도 생각했다 포기'"
동영상 <Donga.com>
영상취재 정영준, 박태근
이올린에 북마크하기